적당히 위험한 놀이터는 가능한가

놀이터에 관한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뒤따르는 질문들은… 아무리 잘 디자인 된 위험도 아이들을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모험, 탐험, 학습, 도전, (현실세계 혹은 원형적 행위의) 재현을 담당하는 디자인 요소들이 어떻게 소위 ‘적당’한 균형을 가져서 위험 요소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적당히 다치는 건 괜찮다 할 수 있을까? 부모의 마음도 그럴까? 디자이너가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을까? 그래야 할까? 

Tecno Nomos

두꺼운 (가능하면 다이 캐스팅 부속을 사용한) 금속 프레임에, 다리는 달 착륙선 landing legs 처럼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사선으로 벌어지고 (splayed legs), 바닥과 면하는 부분 혹은 상판과 면하는 부분에 동그란 패드가 달려있는 형태의 테이블을 좋아한다. 

 

아래는 이런 디자인의 대표 주자들

– Alberto Meda 디자인, Alias Frametable
– Antonio Citterio 디자인, Vitra Ad hoc
– 건축 사무소 MVSA Architects 디자인, Ahrend Ahrend 1200
– Norman Foster 디자인, Tecno Nomos
– Antonio Citterio & Glen Oliver Löw 디자인, Kartell Glossy 

 

그 중 하나를 고르라면 언제나 Tecno Nomos. 1986년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80년대 초 그가 설계한 Renault Distribution Centre에 프로토타입이 먼저 사용되었고, 86년에 Tecno가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했다고 한다. 프로토타입은 요즘 Tecno의 매끈한 알루 프레임과 달리 르노센터 외부 구조와 같은 샛노랑색이었다고. 유리 상판을 얹은 ‘Table‘ 시리즈가 유명하지만, 난 90년대에 생산된 구형 ‘Workstation’ 시리즈를 더 좋아한다. Workstation의 경우 프레임을 끼워서 작은 선반을 얹거나 가림막 등을 더할 수 있는데, 72cm 짜리 긴 upright 프레임 위에 선반을 얹으면 선반이라기 보단 상판에 가깝다. 상판 아래에 조명을 설치하기도 하는데, 90년대 제품들을 보면 72cm 프레임 위에 Nomos 전용 Alp조명을 하나 더 연결해서 플로어 조명처럼 쓰기도 했나보다. 물론 이 조명을 upright 프레임 없이 책상면에 바로 꽂으면 데스크 조명이 된다. 

Meda Chair

Meda Chair © Vitra
Designed by Alberto Meda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구해본 Vitra Meda Chair. 디자이너보단 엔지니어라 불리기 좋아하는 Alberto Meda가 자기 이름을 걸고 만든 의자다. 많은 경우 공학적으로 정교한 물건은 미학적으로도 훌륭하다.

아들 Francesco Meda는 저 큰 이름 “Meda”라는 산을 넘어설 수 있을까? 

Tomado bookshelves

Tomado Holland 빈티지 책장

아파트 시절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던 Tomado Holland 선반이다 (원래는 책장으로 판매되었다). Nills String과 함께 인기있는 벽선반이다. 나무와 철재 모델이 있는데, 나무 선반 구하기가 조금 더 어려운 편이다. 어렵게 어렵게 몇 세트를 맞춰서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 Tomado에서 철재선반을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다.

여러모로 String이 훨씬 잘 만들어진 제품이지만 (당시 String 선반의 네덜란드판 모조품 정도였을 것 같다), Tomado 철재 선반들의 경우 De Stijl의 색감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스트링에 비해) 두겹 프레임이 만드는 독특한 구조미 때문에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HUBB

HUBB © Mecanoo / Fontys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 Rachelsmolen Campus in Eindhoven

네덜란드 학교, 도서관, 회사들은 좋은 책상, 의자, 조명 구입에 깜짝 놀랄만큼 많은 돈을 쓴다. 덕분에 좋은 가구와 조명이 얼마나 왜 중요한지 즉접 보고 느낄 기회가 많다.  

틸버그 캠퍼스에서 아인트호벤 캠퍼스로 옮기게 되었을 때 Rachelsmolen R3 빌딩에서 일하게 되어 내심 좋았다. 캠퍼스가 위치한 도로명 “Rachelsmolen”의 앞 글자를 딴 R3 빌딩은 80년대 말에 지어진 낡고 못생긴 건물이었다는데, Mecanoo가 레노베이션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Gispen과 함께 작업했다.

덕분에 요즘 값비싼 Gispen 가구들을 마음껏 써보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라운지 체어는 Ellen 2 모델이고, 1층 그룹 활동 공간에 쓰인 모듈형 가구는 두 회사가 함께 디자인 한 Hubb 시리즈다. 흥미롭게도 Gispen은 Hubb를 “Learning Environment”로 브렌딩하고 있다. 실제 사용하면서 느끼는 학습 환경으로써의 가치는 (아마도 시공의 융통성에 비해서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인데, 그래도 건축 프로젝트에서 물리적 학습환경과 그 영향을 진지하게 고민한 것 같아 일단 반갑다.  


Mecanoo는 델프트 공대 도서관을 설계했고, 요즘 Tilburg에서 가장 핫한 공간인 LocHal 인테리어를 맡은 건축회사

Gispen은 튼튼하고 편리하고 편안하면서 구조미가 돋보이는 사무용 가구를 만들었다. 요즘 제품들이 오히려 옛날 제품보다 조금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튼튼’함 면에서 재료들이 가벼워지면서 무게감이 사라졌달까. 모델명 Giso No. 12, 13 같은 1920년대 천장 조명이나, 1940년대 사무용 책상과 책장들은 수집가들에게 늘 인기다.

 

Hamra

by Collectif Encore

Photo © Michel Bonvin

오랜만에 스크렙하고 싶은 건물 발견. 탁 트인 대지, 굴뚝/난로/사다리/지붕/욕조의 활용법, 개방감을 극대화하는 창, 단순한 매스, 콘크리트와 나무의 합, 주택이자 일하는 공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우겨넣으면 대충 이런 건물이 나오는구나.


설계 및 인테리어 디자인
Anna Chavepayre (Collectif encore)

https://www.archdaily.com/910867/hamra-collectif-encore

7 chair

Model 3170 / Fritz Hansen

전에 일하던 학교에 그야말로 막 굴러다니던 의자였고, 로테르담 중앙 도서관에 가도 볼 수 있는 7 chair 또는 butterfly chair. 비슷하게 생긴 수 많은 모조품의 원조다. 사진은 한 때 우리집 식탁 의자였던 1973년 생산품. 신형 보다 다리가 짧아서 요즘 식탁에는 잘 맞지 않는다.

딱히 흠 잡을게 없어서 흠 잠을 데 없는 디자인!

A playground designed by Van Eyck

© Amsterdam Photographic Archives ( 010009008748) 

“정글짐은 단순히 타고 오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주 보는 장소이자 내다보는 망대여야 한다”

– Van Eyck

사진은 Van Eyck 가 디자인 한 첫 번째 놀이터라 알려진 곳. 암스테르담 Bertelmanplein에 있다. 두꺼운 시멘트로 둘러쳐진 사각 혹은 원 형태의 모래터(sandpit), 반원 정글짐, tumbling bar. 지금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초등학교 놀이터의 전형적인 구조물들은 아마도 Van Eyck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놀이터는 어떤 장소여야 할까? 공간과 환경을 경험하고 몸의 근육을 쓰고, 사회적 관계를 익히기에 놀이터는 어떤 근원적인 경험을 선사하해야할까? 저 사진 속 단순한 구조물에 몇 가지 답이 있으려나?

Bertelmanplein 놀이터를 포함하여 그가 디자인 한 800여 개의 놀이터 중 90여 개는 그 모습 그대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고릴라 탈을 쓴 그 사람

Simons와 Chabris의 Selective attention 실험 (일명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 관련 자료를 찾다가 문득 고릴라 코스튬을 입은 사람이 누구였는지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당시 Daniel Simons가 논문을 지도했던 Elisa Cheng이란 학부생이었다. 우등생이었고 졸업 후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여 신경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사실 그녀는 (적어도) 한 번 더 고릴라 탈을 썼다. 2004년 Simons와 Chabris가 14회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을 받게 되었을 때, 수락 연설 중 어김없이 Miss Sweetie Poo (이그노벨 수여식에서 수락 연설이 길어지면 “지루해요, 적당히 하세요!” 라고 소리치는 소녀)가 등장하자 고릴리가 나와서 Miss Sweetie Poo를 어깨에 들쳐메고 내가는데 그 때 고릴라 탈을 쓴 것도 Elisa Cheng이었다고. 

이런 쓰잘데기 없는 걸 찾느라 한 시간 넘게 여기저기 뒤적이다 보니 Elisa Cheng이 언제 누구와 결혼했는지, 심지어 양가 부모님 직업까지 알게 되었는데, 뭔가 개인사를 파헤치는 것 같긴 하지만 은근히 이런 삼천포로 빠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나저나, Chabris의 99년 박사 학위 논문은 체스 마스터의 인지능력에 관한 것이다. De Groot와 Chase의 체스 마스터 관련 연구와 비교해서 읽기 좋다.

학문은 늘 엄숙하기보단 때때로 그저 호기심을 쫒아가기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그노벨은 정말 괜찮은 상이라 생각한다. 얼른 배변과 인지능력 관련 실험해서 논문 하나 내야지.  


  • Simons, D. J., & Chabris, C. F. (1999). Gorillas in our midst: Sustained inattentional blindness for dynamic events. Perception, 28, 1059-1074.
  • Chabris, C. F. (1999).  Cognitive and neuropsychological mechanisms of expertise: Studies with chess masters (Doctoral Dissertation). Retrieved from http://en.scientificcommons.org/43254650
  • Chase, W. G., & Simon, H. A. (1973).  Perception in chess. Cognitive Psychology4, 55-81.

Hitting a high note?

1993년, Daniel Kahneman과 동료들은 ‘Peak-and-End Pattern’ 관련 멋진 실험 결과들을 연이어 발표한다. 그 중 대표격인 논문 “When more pain is preferred to less: Adding a better end“에서 실험 참가자들은 고통이 느껴질 만큼 차가운(약 14°c) 물에 손을 넣고 한쪽 손은 60초, 다른 쪽은 90초를 견뎌야 했다. 단 90초의 경우 마지막 30초 동안 약 15°c까지 온도를 천천히 올리면서 고통을 완화했다. 같은 실험을 반복해야 할 경우 60초와 90초 조건 중 어떤 걸 선택할지 물었을 때 실험 참가자 대부분은 고통을 더 오래 느껴야 함에도 불구하고 90초 조건을 선택했다. 두 조건 간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Peak)이 같을 경우, 최종 경험(End)에 대한 회상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최근에 Kahneman의 실험을 참고한 흥미로운 논문, “Hitting a high note on math tests: Remembered success influences test preferences“가 발표되었는데 온도가 다른 차가운 물 대신 난이도가 다른 수학 문제를 이용해 학습자 의사결정에서 나타나는 Peak-and-End Pattern을 증명했다.

오래간만에 즐겁게 읽은 논문이다. 특히 JOL (Judgement of learning) accuracy에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서 읽어보시길.